푸른산호초 마츠다 세이코는 누구? 화려함 뒤에 숨겨진 스캔들
최근 푸른산호초라는 곡을 부른 마츠다 세이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죠. 오늘은 그녀의 화려한 연예인으로서의 삶 뒤에 숨겨진 우리가 잘 알지 못한 숨겨진 그녀의 스캔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마츠다 세이코 (松田聖子)는 1962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1980년대 초반부터 일본 음악계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인물입니다. 그녀는 일본의 경제 대호황기, 즉 '버블 경제' 시절을 풍미한 슈퍼스타로, 수많은 히트곡과 독보적인 패션 감각으로 일본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80년에 데뷔한 마츠다 세이코는 첫 싱글 "Hadashi no Kisetsu"로 대중의 눈길을 끌며 곧바로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이후 "푸른 산호초"와 같은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일본을 대표하는 아이돌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녀의 성공적인 가수 활동 외에도 마츠다 세이코는 미국 시장에도 도전했으며, 뉴키즈 온 더 블록과의 교류 및 뉴욕에서의 활동 등으로 국제적인 인지도도 쌓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화려함 뒤에 많은 논란과 스캔들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화려한 연예 활동과 주요 스캔들
고히로미와의 파혼
1985년 6월 24일 열린 1억엔 초호화 결혼식은 아사히 TV에서 10시간 독점 중계 방송해 34.9%라는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합니다. 당시 이시하라 유지는 방송국에 이 시청권을 팔아 경비를 제외하고도 수천만엔의 개런티를 챙긴 것으로도 크게 이슈가 됩니다.
콘도 마사히코와의 불륜설 그리고 나카모리 아키나
첫번째 불륜 제프 니콜라스
첫 번째 남편인 칸다 마사키와 결혼 이후 미국 가요계로 진출하기 위해 홀로 미국으로 떠났던 그녀는 90년대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던 아이돌 그룹 '뉴키즈온더블록'의 도니 윌버그 그리고 세계 최정상 가수 마이클 잭슨과도 교류 할 만큼 세계적인 셀럽으로 성장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녀의 왕성한 미국 연예계 활동으로 인해 미국에서 끊이지 않는 여러 불륜설과 스캔들이 발생 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녀의 결혼생활은 순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의혹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결혼생활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실제 불륜으로 밝혀진 최초의 사건이 터지고 마는데 그것은 바로 미국 청년 제프 니콜스와의 불륜 사건 입니다. 미국 가요계 진출 당시 그녀의 담당 영어 강사가 바로 제프 니콜스였습니다. 두 사람은 뉴욕에서 무려 3년간 동거 생활을 하면서 결혼을 계획했고 심지어 미래에 낳을 아이 이름까지 미리 지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들은 얼마지나지 못하고 결별하게 되지만 그녀의 연인이던 니콜스는 결별 후 일본으로 들어와 세이코와의 일들을 폭로하는 책을 출간하게 됩니다. 이 책은 당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는 꽤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이코는 악녀 이미지에 더해 희대의 불륜 여왕이라는 이미지까지 얻으면서 대중의 맹비난을 받았지만 오히려 이 사건을 광고 전략으로 이용하기 위해 그녀를 광고 모델로 발탁하여 서양 모델과의 과감한 스킨십과 노출을 컨셉으로한 기업 광고가 제작되었습니다. 해당 제품은 크게 히트를 치게 되면서 이 불륜 사건은 세상의 관심을 벗어날수 있었고 그녀는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알란 리드와의 염문설 미국진출 실패와 이혼
1993년, 마츠다 세이코는 백댄서 알란 리드와의 염문설로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습니다. 세이코는 그를 프로듀스하여 가수로 데뷔시켰으나, 알란 리드가 세이코를 성추행으로 고소하며 큰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증거 불충분으로 종결되었으나 세간에서는 그녀가 돈으로 사건을 무마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세이코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치과 의사 하타노 히로유키와의 초스피드 재혼
세이코는 칸다 마사키와 이혼한지 2달 후 6살 연하의 치과의사 하타노 히로유키와 스피드로 재혼합니다. 이들은 딸 사야카의 치과 통원치료 과정에서 만나게 되었고 순식간에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되었다고 인터뷰 했지만 불륜 사이었을 거라는 의혹은 계속 제기 되었습니다.
신지와의 불륜
마츠다 세이코는 70년대 아이돌 출신 싱어송라이터 하라다 신지와 앨범 작업과 콘서트 중에 불륜 관계를 맺었습니다. 하라다 신지도 유부남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더욱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결국 세이코는 이 일로 그녀는 두 번째 남편과 이혼하였습니다. 이혼 발표 당시 그녀는 매우 당당했으며 슬픈 표정도 없이 담담하게 2년간의 결혼 청산을 알렸습니다. 유부남이던 하라다 신지도 얼마후 이혼을 발표하면서 둘의 재혼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으나 그들은 2004년 관계를 청산할 때까지 계속 연인으로 지냈습니다.
출신 매니저 카다와 마사미치
그녀가 다니던 한 마사지 샾에서 일하던 11살 연하의 마사지사로 과거 격투기 선수를 잠시 한 적이 있다는 카다와 마사미치를 자신의 매니저로 고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매니저의 역활이 전부가 아니었던 카다와 마사미치는 곧 그녀의 집에서 동거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녀의 가족들이 만류하기도 하고 딸이 집을 나가기도 했지만 그녀는 카다와 마사미치와 계속 동거를 합니다.
그런데 이 마사지사는 일본 유명 개그맨이자 영화감독인 기타노 다케시의 군단에서 일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기타노 다케시의 딸 이코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는데 다케시가 결혼 비용으로 준 3천만엔을 가지고 잠적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호스테스라고 하네요. 결국 세이코가 이 일을 해결해 주고 함께 동거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와는 별개지만 다케시의 딸 이코는 다케시가 이혼한 전부인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고이다 보니 어릴때부터 자신과 나이 차이가 비슷한 새엄마와 매우 사이가 나쁜데다 사춘기 시절 반항아로 많이 방황했다고 합니다. 잠시 가수와 영화사도 운영했고 결혼해서 딸을 낳았지만 현재는 이혼한 상태로 아버지와도 연락을 끊고 지낸다고 하네요..
대학 의학부 교수 카와나 히로마사와 결혼
2010년 치과치료를 받다가 2살 연하의 기쥬쿠 대학 의학부 준교수인 치과의사 카와나 히로마사와 사랑에 빠집니다. 당시 히로마사는 15년 동안 함께 한 8살 연하의 아내와 아이 둘이 있는 유부남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세이코와 결혼하기 위해 2010년 아내와 협의 이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2년 뒤인 2012년 세이코는 개인 홈페이지에 결혼 했음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이 세 번째 결혼도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얼마 후 이혼하게 됩니다.
그녀가 세번째 결혼을 했을 때도 매니저는 신혼집에서 10분거리 아파트에서 지내게 했다고 합니다. 2013년 결국 여론과 매스컴을 의식해서 9년간의 불륜을 끝내고 매니저를 교체하는 듯했지만 여러곳에서 매니저와 오붓한 데이트를 하는 모습이 목격되고 있습니다.
딸 칸다 사야카의 비극
배우 칸다 마사키와 1985년 결혼한 마츠다 세이코는 1997년 이혼했는데 이 두 사람의 딸이 칸다 사야카 입니다. 그녀는 2017년 배우 무라타 미츠와 백년가약을 맺었으나 불과 2년 만에 이혼을 했습니다.
마츠다 세이코의 딸, 칸다 사야카는 그후 2021년 12월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녀는 이혼 후에도 배우와 가수, 성우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중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 삿포로 공연을 해 투숙 중이던 호텔 14층 옥외 공간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극단적 선택 및 사고사 가능성을 모두 열어뒀던 경찰은 유족의 뜻에 따라 의학적 최종 사인 외에 구체적인 추락 원인은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개인적인 사생활 문제와 스트레스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것으로 보입니다.
딸의 죽음 이후, 마츠다 세이코는 큰 슬픔에 잠겼지만, 팬들과의 소통을 위해 여전히 콘서트와 디너쇼를 개최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2년부터 다시 투어를 재개하며 팬들과의 만남을 지속하고 있으며,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의 마츠다 세이코
마츠다 세이코는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매년 콘서트와 디너쇼를 열며 팬들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있으며, 딸의 죽음 이후로도 꾸준히 무대에 서고 있습니다. 또한, 영화 감독으로도 데뷔하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 그녀의 재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마츠다 세이코의 삶은 화려함과 슬픔이 공존하는 이야기로, 일본 대중문화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