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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장 드라마로 보는 명나라 이야기


주원장 드라마로 보는 명나라 이야기

중국 명나라 초대 황제인 주원장을 다룬 드라마는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정통 대하드라마 형식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는 2008년 호군(후준:胡军) 주연의 드라마와 2004년 진보국 주연의 드라마가 가장 대표적이죠. 이중에서 오늘 호군 주연의 드라마 주원장을 알아보겠습니다.

중국 역사 중에서도 문화 대혁명 당시 명나라의 문화제가 대부분 사라져 버려서 그 자료가 희귀하기에 중국 명나라에 대한 역사 드라마가 많지 않은게 사실입니다. 그런  호기심으로 명나라 주원장에 대한 이야기와 당시 복식에 대해 여러 자료를 많아 살펴보다가 관련 드라마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2006년에 방영된 거의 20년 전 드라마다 보니 이 드라마를 소개하는 글들과 영상에는 투박한 사진과 단순한 의상, 어린 서다와 어린 중팔이 나오는 초반 장면들 때문에 첫 회만 보고 거의 드라마 감상을 중도 포기 할 뻔했습니다.

나는 역사 드라마의 서사시적 표현과 묘사를 존중하지 않지만, 이 드라마는 보면 볼수록,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왕조 초기 혼란 상황 속 정치적 투쟁과 인간 본성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생생하게 나타나고 역사상 대영웅의 인간적인 삶에 대한 감동을 자아내는 클라이막스가 존재하는 걸 보고 나서야 왜 이 작품이 명작이라고 평가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고 나서야  펑샤오닝이 감독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웅장함, 독특한 관점, 열정적인 감동으로 유명하며 동시에 문화적 사고를 담으려는 노력이 많이 보이는 걸로도 유명하죠.

그는 중국의 5세대  감독 그룹에 속하지만 예술가로서의 그는 그들과 조금 다르고 그의 작품 역시 그 스펙트럼과 유형이 매우 다양합니다. 그리고 그는 영상 제작에 매우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감독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예산이 더 많이 책정되었다면  이 작품에서 명나라 초반 건국 전쟁을 그런 식으로 압축 시키거나 생략 시켜서 순삭 시키듯 중간 내용을 날려버리는 제작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또한 조연이나 엑스트라도 더 잘 선정 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큰 예산이 필요치 않았던 정치적 일부 세부 사항은 역사적 사실에 더 충실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였고 세심한 묘사와 인물 표현에 중점을 둔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TV 시리즈는 확실히 별 5개 만점을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사실 극 중 주원장 출신을 표현 할 때 곽자흥은 마왕후 때문에 합류한 것으로 묘사 되지만 사실 그의 어린 시절 친구인 탕화(唐貴)는 이미 반군에서 치안 장군의 지위에 올랐을 무렵 주원장에게 편지를 써서 주원자을 반군에 입대 시키기 위해 권유 합니다.

그러나 주원장은 전쟁터로 가고 싶지 않아 그 편지를 불태웠지만, 결국 곽자흥의 병력 모집령을 받고서야 강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저우산 시절은 주원장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그는 곽자흥의 양녀였던 마씨와 결혼했을 뿐만 아니라 그는 호주성을 다스리던 여러 두령들 간의 내전 중 곽자흥을 구출하고 빠르게 승진했습니다. 


그럼에도 곽자흥은 그를 쉽게 신용하거나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원장은 목숨을 걸고 군대를 이끌며 싸울수 밖에 없었습니다.. 야사에 따르면, 주원장은 이때 24명을 의형제들을 모집하였는데 이들이 명나라의 건국의 기초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물론 일부는 친척도 있었습니다. 이는 현대의 MLM(다단계 판매) 구조와 매우 일치합니다. 주원장은 탕화, 서달, 남옥, 유기, 이선장 , 호유용, 왕광양, 양헌 등 그 시대 최고의 재능을 가진 인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기에 그가 실패하는 건 어려웠습니다. 

전반기의 가장 명장면은 실제로 주원장의 전략적 비전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많은 지략가와 강력한 장군들이 수많은 전략과 전술을 건의 할 때 가장 최선의 길을 제시하는 강력하고 확고한  신념을 지닌 리더로서의 주원장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먼저 전쟁을 시작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한 세력인 장사성을 먼저 공략하는 방법을 건의 했지만 주원장 만이 가장 강력한 진우량을 먼저 공격할 것을 선택했습니다.장사성은 부자이고 비겁하여 진우량을 지원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을 것을 정확히 간파한 주원장의 군주로서의 안복이 돋보이는 장면이였습니다.
그러나 주원장은 이때 큰 실수를 저질렀는데, 그것은 진우량이 공격해 올것을 알고도 소명왕 한림아와 유복통을 구출하기 위해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홍건적의 명목상의 최고 지도자로서 지금 당장 장사성에게 살해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때 진우량은 주원장의 옆에서 호시탐탐 헛점이 생기길 지켜보고 있었지만 주원장은 유기의 강력한 충고를 무시하고 그들을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이 결정으로 인해 진우량에게 60만의 군대를 이끌고 홍두를 공격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진우량은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한 주원장을 무너트리기 위해 68만명의 병력을 한꺼번에 이끌고 진군했고 그 무렵 주원장은 장강(長江)을 타고 오는 진우량의 수군을 제압하기 위해 재빨리 200여 척의 군함을 만들어야 했고 선박을 건조할 시간을 버는 것만이 유일하게 살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남경으로 오는 관문인 홍도(洪都)에서 3만명의 병력을 배치 시키고 100일 넘게 진우량의 군대를 막아내도록 명령하게 됩니다.

다행히 홍두는 기적적으로 3개월 이상 방어 되었고 그 덕에 주원장은 결국 정치적으로 뜨거운 감자였던 소명왕 한림아를 안풍(安豐)에서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후에 소명왕을 저주(滁州/지금의 안휘성 저주시)에서 3년간 편히 머물도록 배려하고 진우량을 막을 200척의 배도 건조 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극 중에서는 홍도(洪都)를 지키는 사람이 남옥(藍玉)장군으로 나오지만 사실 홍도를 지킨 사람은 주원장의 조카 주문정(朱文正)이였습니다. 홍도의 남창성을 85일간 굳건히 지켜낸 공로가 있었기에, 주원장이 파양호 결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진우량과의 전투에서 가장 큰 1등 공을 세웠음에도 보상을 논의할 때 겸손하게 행동하며 자신은 같은 주씨 집안 사람이니 다른 신하에게 높은 자리를 주라고 겸양을 보였다고 합니다. 주원장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건지 아니면 일부러 조카의 힘이 커질걸 경계한 것인지 모르지만 주원장은 주문정에게 결국 아무런 보상을 수여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실망한 주문정은 그 울분을 감추지 못하고 갈수록 법을 지키지 않게 되었고, 공공연히 민가의 부녀자들을 빼앗아 희롱하고는 우물에 빠뜨려 죽였습니다. 심지어 이유 없이 잔혹하게도 사람들의 혀를 베기도 하였고, 황제만 할수 있는 용봉 도안으로 수 놓아진 비단으로 자신의 침실을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소를 지속적으로 받은 주원장은 친히 강서로 가서 그를 체포하여 안휘에 유폐시킨 후 그의 심복 50여명의 다리 근육을 절단하여 다시는 걸어 다니지 못하게 해버립니다. 이로 인해 주문정은 변심을 하여 장사성과 내통하여 역모를 일으려고 준비하게 됩니다. 다행스럽게도 주원장은 이를 미리 발견하고 주문정을 제때에 투옥시켜 재앙을 막을수 있었습니다.

주원장은 주문정을 처형하려고 했지만 마황후(馬皇后)의 만류로 인하여 그렇게 하지 않고 평생을 옥에 가두어 목숨만은 연명하게 해주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주원장이 주문정을 죽이지 않은 것은 주씨 일가 즉 황족간 내분을 발생시키지 않은 잘한 일이었습니다. 주원장은 그 후 홍무 3년(1370년) 겨우 여덟 살 난 주문정의 아들을 왕에 책봉하고 계림의 봉토에서 살도록 해주었습니다.




주원장은 진우량과 장사성을 성공적으로 제거하고 오왕의 자리에 올랐을 때, 명목상 자신의 주군이던 한림아는 이제 자신의 황제 등극을 막는 장애물일 뿐이었습니다. 주원장은 이런 장애물을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요영충을 보내 그들을 처리하도록 하는 장면이 극중에 나오는데 이때 호유용은 유영충도 함께 소명왕과 함께 자진하도록 종용합니다.

결국 요영충은 소명왕을 더 안전한 남경으로 모셔간다는 명분으로 배에 태우고 과보(瓜步)에 도착하자 배를 침몰시켜 함께 수장됩니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는 요영충은 죽지 않고 다른 배를 타고 뒤따르다가 소명왕의 배만 침몰시켜 소명왕과 수많은 비빈 그리고 소명왕을 따르던 모든 신하들을 수장 시킨 후 남경인 응천으로 돌아와 주원장에게 "오왕의 명을 완수했습니다" 라고 보고 했다고 합니다.

모든 전쟁이 끝나고 명나라 건국이 시작되는 순간부터가 이 드라마의 진정한 주요 이벤트가 시작하는 부분입니다. 극에서는 이선장과 호유용이 이끄는 회서파와 유기와 양헌을 대표하는 절동파 간의 정치적 대립을 보여줍니다.

이 두 계파 중 주원장의 고향인 회서 지역의 인재들은 주원장의 정치적 기반이자 황권을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입니다. 이 사람들이 없었다면 명나라의 기초를 세울수 없었을 것이고 주원장은 황제가 될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대명제국이 기틀이 세워지고 나자 그 황제로서의 비전은 회서 지역에만 국한될 수 없게 됩니다. 나라에 하나의 세력에만 힘이 쏠린다면 황제는 그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원장은 유기와 양헌의 절동파를 이용해서 회서파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극 중 백온 유기는 세속적인 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권력과 부를 추구하지 않으며 고향 청천으로 돌아가 노후를 안분지족의 삶을 원하는 일종의 성인군자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권력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극중 이선장은 질투심 많고, 음탕하고, 꾸물거리는 노인으로 묘사되지만, 사실 명나라 건국의 여섯 대공을 이끄는 실질적 인물은 이선장 이었습니다. 명나라를 반석 위에 올린 건국의 첫 번째 영웅이라 할 수 있지만 그 내면은 보잘것 없는 사심이 많은 범부에 지나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랬기에 그와 유기 사이에는 정치적 견해차로 인해 빈번한 의견 충돌이 있었습니다.

극에 묘사 되었듯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유기를 정치적으로 공격한건 아닙니다. 유기 자신은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가장 아끼던 제자인 양헌을 앞세워서 회서당에 맞서 싸웠습니다. 극에서 양헌의 능력에 크게 감명을 받은 주원장은 승상인 이선장을 바꾼다면 양헌, 호유용, 왕광양 중 차기 정승에 적합한 젊은 인재는 누구인지 유기에게 물어봅니다.


위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모두 역사적 사실과 일치합니다. 극 중 유기는 승상 자리를 거절하면서 은퇴하고 싶다고만 말했지만 역사 기록에서는 이렇게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만약 이선장을 바꾼다면 누가 승상을 맡을 수 있을 듯 하오?"


"그것은 폐하께서만 결정해야 합니다." 


“그대 생각에 양헌은 어떻소?” 


“양헌은 승상이 될 만한 재능은 가지고 있으나 승상의 도량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불가합니다.“ 


“왕광양(汪廣洋)은 어떻소?”


“이 사람은 매우 천박하여 양헌만도 못하기에 불가합니다.”


“호유용은 어떻소?”


“호유용은 지금 한 마리의 작은 소이지만 장래에 틀림없이 쟁기의 속박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내가 생각에는 승상 자리는 오직 선생만이 맡을 수 있겠소.”


“제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오나 다만 저는 악을 원수처럼  증오합니다. 황상께서는 천천히 고르십시오. 지금 이 사람들 중에 제가 보기에는 적합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 대화는 분명 주원장이 유기를 시험해본 대화입니다. 양헌은 절동파 사람으로 이를 추천 한다면 그건 유기가 양헌을 앞세워 회서파를 무너트리고 절동파들이 권력을 넘본다고 봤을테지만 유기는 이를 간파하고 잘 넘깁니다. 

두번째 시험인 왕광양은 회서도 절동도 아닌 제3의 중립적인 세력의 인물이기에 여기에 찬성을 했다면 절동파와 제3의 세력이 서로 야합 했다고 주원장은 판단 했겠지만 이 역시 유기는 잘 넘깁니다. 

마지막 호유용은 회서당파로 주원장의 세력이기에 심중에 회서파를 중용하려는 뜻은 이미 어느 정도 세워져 있었지만 그 인물에 대한 평을 듣고자 한 것이기에 유기가 호유용에 대한 평가를 정확히 내려준 것으로 명답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유기 자신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안은 완전히 잘못된 답안을 내고 맙니다. 정승의 자리에 스스로가 적임임을 말하면서 악을 원수처럼 증오한다고 말한 것에 대해  황제는 "그러면 부와 권력을 탐하지 않는 고고한 선비인 너는 악을 미워한다면서 그 대상이 황제인 나를 뜻하는 것인가?" 라는 의미로 해석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너무 똑똑하고 입이 심술궂다는 이유만으로 관리가 되고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그는 황제의 사랑을 받지도, 신뢰를 받지도 못합니다.  실제 역사에서는 유기는 정승 자리에 뜻이 있었다는 걸 알수있습니다. 하지만 천재들 특유의 고귀한듯 오만해 보이는 모습으로 인해 황제의 미움과 경계를 받았기에 정승 자리에 오를 수 없었을 뿐입니다.

또한 극 중 유기는 늘 은퇴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황제는 이를 거절 한다는 내용으로 묘사 됩니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유기는 홍무 3년에 강제로 은퇴를 당하게 됩니다. 양헌은 양주 부흥통치 사건이 발생했을 때 참살되지 않았습니다.

양헌은 왕광양을 모함하려던 사건이 당시 태사령인 유기에게 제보가 되면서 사건의 전말이 들어나게 되면서 호유용 일파의 상소로 손쉽게 참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유기 또한 결국 호유용의 약을 먹고 독살 당하게 됩니다. 유기가 독살 당하면서 극중 주원장의 분노는 극에 달하지만 이미 커져버린 호유용과 군벌들의 결탁은 주원장도 쉽게 손을 못쓰는 듯 묘사 됩니다. 



하지만 사실 호유용을 제거하는 것은 주원장에게는 매우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어떠한 힘도 사용하지 않고도 얼마던지 해결할 수 있지만 주원장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완전히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극 중 송련이 말한 내용은 역사적으로 매우 정확한 사실입니다. 중국의 수천년 봉건사는 기본적으로 황제의 권력과 승상의 권력 사이의 투쟁이었습니다. 마치 현대 사회의 재벌 회장과 CEO 사이의 투쟁과도 같습니다. 

최정상의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기울어 가는 해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창업주인 주원장은 기울어 가는 해의 모습을 멈추고 싶었기에  일에 심취한 워커홀릭 처럼 업무에 메달렸고, 권력을 갖고 있다는 느낌도 좋아하기 때문에 자신의 손에 권력을 나눠줄 재상을 찾는 것이 불가능 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원장은 계획을 세웠고, 이선장을 쫓아낸 후 호유용을 7년 동안 재상으로 삼았습니다.그리고 호유용이 재임하는 중에 아무리 과한 교만한 일을 저질러도 눈감아주며 더욱 재상으로서 더 많은 폐단을 저지르길 기다리며 재상제를 폐지할 명분을 쌓아 올렸습니다. 그러다가 중서성이 모든 조정의 업무를 장악하게 되어 보고가 왕에게 올라가는 것이 호유용의  선택에 의해서 좌우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중 참파국의 조공이 도착한 것이 주원장에게 보고 되지 않은 것을 이유로 호유용을 잡아 들이게 됩니다. 이 사건이 발단이 되어 거의 15,000명에 가까운 목숨을 앗아갔고, 주원장도 재상제를 폐지하는 데 성공할수 있었습니다. 이후 황제가 직접 6부(六臣)에 관리를 배정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재상은 명목상으로만 제거됐을 뿐입니다.

주원장은 일 중독 황제였지만, 후속 황제들에게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후대에는 3공 3고의 재상은 명예직 이였지만 내각 학사가 실질적 재상의 역할을 했으며 이들은 후대에 황제보다 더 많은 권한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원장은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관리들에게는 그렇게 관대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 이유는 어렸을 때 집안이 가난하여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경험 때문 일겁니다. 부패한 관리들로 인해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자신도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는 본능적으로 부패한 관리들을 매우 증오 했습니다.

이러한 관리들을 미워하면서도 자신의 제국을 위해 그들의 능력이 필요 했기에 능력있는 자라면 누구나 등용했고 요직을 주었지만 항상 신하들을 불신 했습니다. 이로 인해 수 많은 관료들이 사건이 터질 때 마다 투옥되고 참수 당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주원장의 주요 4대 사건 관련해서 무려 10만 명의 관료들이 참수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모두가 뇌물을 받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제도의 문제와 명나라의 급여가 너무 낮았기 때문입니다. 연극에서 유보원이 2급 관료가 되었지만 여전히 식량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결국 급여가 정지된 후 가족들은 끼니를 잇기가 어려웠습니다. 사실 우리는 감독과 작가가 진시의 시골 파견, 양주 3개년 계획, 기사 작위 및 대숙청을 포함하여 많은 것을 암시하고 심지어 역사를 각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현재의 주류 견해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화와 TV 시리즈 자체도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관용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배우로서 보면, 호군은 처음에는 멍청한 군인으로 시작해 끝에는 결단력 있고 결단력 있는 황제로 변모합니다.

 때로는 무모하게 보이지만, 영리한 면모도 드러내며 이 드라마를 이끌어갔습니다. 그의 연기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마황후를 안고 있는 고통스러운 장면은 많은 사람들을 울게 만들었습니다. 

유기, 이선장, 호유용, 양시안 등 주연 배우들 모두 아주 훌륭한 연기를 펼쳤습니다. 마황후를 연기한 배우와 여창, 송련 등의 조연들도 역사상 유명한 황후들을 잘 표현했습니다. 일부 배우와 엑스트라들은 아쉬운 면이 있지만, 드라마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습니다. 

 주원장의 성격을 깊이 알게 되면 그가 매우 복잡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평판이 엇갈리는 인물입니다. 한민족을 통일한 마지막 봉건국을 세운 공로가 있으며, 남북을 통일한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의 결점도 분명합니다. 출신이 가난하고 겸손했기 때문에 자신감이 부족했고, 

권력에 대한 강한 열망과 통제하려는 욕구가 강했으며, 의심이 많고 누구도 쉽게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을 죽이고 국가 정책을 수립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이는 이후 단계에서 활동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